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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9) 검정고무신 이야기- 소꾸모티 1957-60년
신발얘기를 하나 할까요? 옛날에는 모두 고무신을 신고 다녔지요. 운동화는 중학교에 입학해서야 신기 시작했어요. 좀 사는 집 아이들은 백고무신, 없는 집 아이들은 하나같이 검정고무신을 끌고 다녔어요. 좀 신다 보면 그게 닳아서 구멍이 생겼는데, 그걸 그냥 신고 소꾸모티에서 10리 흙길을 타박타박 걸어서 모암국민학교까지 통학했어요. 그게 국민학교 3학년 때인가 모암동으로 이사올 때까지 계속된 제 일과였어요. 도중에 직지내를 건너서 미군들이 닦은 신작로로 학교까지 오면 발은 온통 흙투성이가 되지요. 거기다 비온 후에는 흙반죽이 발에 가득해서 걸을 때마다 “찌거덕찌거덕” 구성진 운율을 울렸구요. 좀 여유가 되는 집 아이들은 그걸 아랫장터 좌판에서 불로 떼워주는 아저씨한테 가지고 가서 떼워서 신구요. 저는 그렇게도 못했어요.
옷은 항상 7살 손위의 형이 입던 것을 물려 받아서 입었어요. 똑 같은걸 제대로 빨지도 않고 줄창 입었지요. 그때, 저희 집은 가내수공업으로 작은 엿공장을 운영했어요. 온 식구가 아침부터 밤까지 매달려 엿을 만들었어요. 제가 맡았던 일은 공장 아구니에 불을 때는 것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모터도 없고 해서 손풀무를 오른손으로 돌리면서 왼손으로는 장작을 아궁이에 집어넣었어요. 그럼 가마솟의 엿물이 달여져서 조청이 되었다가 더 달이면 엿이 되는거에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엿공장에서 불을 때다 그대로 학교에 가니 제 옷에는 항상 엿물이 튀어서 그게 말라붙어서 빈질빈질했어요. 참, 창피했던 것은 그 때문에 걸을 때마다 내 옷에서 “버석버석” 소리가 났던거에요. 그럼 애들이 나를 가르키며 “엿쟁이 똥구멍은 찐득찐득”하고 흉을 보곤 했어요. 겨울에 날이 추우면 불 때다 오니 얼굴도 새카맣고 코에는 콧물이 줄줄 거지거지 상거지꼴로 학교를 다녔어요. 그때는 그래도 아무 불만도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