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05
나의 이야기 (2) 전도사 이야기 -소꾸모티 1952-60년
제가 8살 때까지 살던 소꾸모티의 마을은 앞은 산자락이요, 뒤에는 감천내가 흐릅니다. 산과 내를 따라 차 한 대 겨우 지나가는 국도가 구비구비 돌아가는데 그 모양이 소꼬리 모양이라 "속구미" (사람들은 그걸 소꾸모티라고 불렀어요)라 불렸지요. 모양이 소꼬리인데다, 감천내와 직지내가 만나는 모퉁이에서 동네가 시작한다고 해서, "소꼬리모퉁이"를 줄여서 소꾸모티라고 했던 것 같아요. 공식적인 동네 이름은 신음동인데 그건 지도에나 나오는 이름이구요. 감천내는 그 폭도 제법 넓고 가운데는 깊어서 사실 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래사장이 아주 넓어서 거기서 전국씨름대회가 열리곤 했어요. 그 길을 따라 집들이 양쪽으로 한 채씩 이어져 있었고, 한 10분 정도 걸으면 거기부터는 집이 띄엄띄엄 있는데 멀리 갈 수록 초라한 오두막이 되었어요. 집이 끝나는 지점에 큰 바위가 강가에 있었고 그 바위 밑은 수심이 제일 깊었어요. 큰 바위 즉 방구 (김천사투리)가 있다고 해서 거길 방구뜰이라 불렀어요. 그런데 방구뜰에 면한 오두막은 사람이 살지 않는 흉가가 되었어요. 방구뜰의 바위를 뒤지면 메기가 많이 잡혀서 동네 꼬마들이 자주 가곤 했는데, 그 집 앞을 지날 때에는 아이들도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가곤 했어요. 왜 흉가가 되었는지 얘기할게요.
이건 제가 어릴 때, 누나와 형에게서 들은 이야기에요. 제가 태어 날 즈음에 외지에서 청년이 한 명 와서 그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 사람이 예수를 전하는 전도사였는데, 그 앞산 위에 산주인의 허락을 받고 벽돌로 작은 교회를 짓고, 거기서 동네 아이들을 모아 공부를 가르쳤다고 해요. 당시만 해도 그 동네는 정말 외진 데라 근처에 학교가 없어서 취학연령이 되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을 때에요. 특히 여자 애들은 아무도 학교에 보내려 하지 않았어요. 그래 울 누나와 친구들은 모두 이 분에게서 글을 배웠는데, 누나는 거기서 항상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해요. 반면에 누나 동무 정란이는 맨날 꼴찌했구요. 울 누나는 기운도 장사이고, 머리도 좋고, 대인관계가 탁월하셔서 타고 난 지도자감이에요. 어디든 울 누나가 있음 분위기가 살아났어요. 누나는 평생 그 전도사에게서 배운 걸로 사셨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전도사가 어느날 염병에 걸려서 혼자 시름시름 앓다가 그 오두막에서 죽었다고 해요.
울 형님의 얘기로는 그 집 담에 시커먼 먹구렁이가 나타났는데 그 전도사가 그걸 죽인 후부터, 전도사가 아프기 시작해서 죽었다고 해요. 지킴이를 죽여서 해꼬지를 받았다는 거지요. 원래 누가 갑자기 혼자 살다 죽으면 흔히 이런 류의 이야기가 돌아요. 얘기를 들으니 동네 사람들은 이상한 걸 전한다고 전도사를 탐탁치 않게 여긴데다 염병에 걸렸기에 아무도 그 근처에 가지도 않았대요. 정확하게 병명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제 생각에는 폐결핵에 걸렸는데 아무도 챙겨 주지 주지 않으니까 영양실조까지 겹쳐서 죽었던 것 같아요. 결핵은 잘 먹어야 낫는 병이거든요. 늦게 예수를 믿고 사역자의 길을 걷다 보니 그 분 생각이 나요. 외지에서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쓸쓸히 죽어갔을 그 분을 생각하니 지금도 마음이 짠해요. 세상에는 아직도 이렇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순교하는 많은 주의 종이 있어요. 천국에 가면 이런 분들이 제일 빛나는 면류관을 쓰고 있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