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과거에 언급한 적이 있을거에요. 김일성 이래 북한정권이 내세웠던 인민재판의 명목은 (1) 부르조아, (2) 친일파, (3) 적폐, (4) 외세의존 이렇게 네 가지에요. 물론 남로당도 똑같은 구호를 앵무새처럼 읊어대었구요. 사실 이 네 가지는 친일파란 간판 하나로 집약되요. 한국역사에서 일본의 지배가 오래였기 때문에 당시 조금이라도 가진 자는 생존하려면 일본에 협조할 수 밖에 없었어요. 대원군 이래 쇄국정책 때문에 서방의 앞선 문물에 무지했던 한국의 깨인 지식인들은 당연히 일본에 유학함으로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밖에 없었구요. 무슨 말인고 하니, 당시 조금이라도 깨였던 인재들 가운데 친일파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중국으로 피신했던 극소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 해방후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데 기용되었던 인재들 가운데 친일했던 사람이 대다수일 수 밖에 없었지요.
북한보다도 못한 극빈국이었던 한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으로 김종필 특사를 보낼 수 밖에 없었고, 그 후 한일협정에서 받은 2천만불의 보상금을 밑천으로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추진했지요. 한일국교가 회복되어 일본도 엄청난 이득을 취했지만, 1시간 항해거리에 모든 산업을 갖춘 일본이 있었기에 한국의 산업화가 가능했어요. 그래 현 정권이 친일이란 명목으로 우파출신들을 탄압하는 꼴을 보고, 저는 아 이것이 이들의 정체로구나 했어요. 친일이란 명목은 이현령비현령으로 지들이 탄압하고 싶은 대상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이거든요. 한심한 것은 일본하면 무조건 반발하는 어리석은 촛불출신의 젊은 층이에요. 반일하면 다들 주먹을 휘두르면서 정작 자유민주주의를 송두리째 뒤집고 있는 공산당에게는 참 관대해요. 따지고 보면 반일감정과 반미감정의 이면에는 뿌리깊은 민족적 열등감이 도사리고 있어요. 이 열등감을 극복하지 않는 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없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