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4
나의 이야기 (3) 첫 외출과 망고수박 – 소꾸모티 1955년
이제 소꾸모티 이야기를 다 한 줄 알았는데 조금 전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사건이 있어 기록하려 해요. 이미 얘기한 대로 소꾸모티는 김천 시내에서 직지내 건너에 위치한 한데였고, 직지내를 건너야 진짜 시내로 들어가 거기서 10분 정도 빠르게 걸으면 아래장터가 나타나요. 이 아래장터가 바로 모든 물자가 모이고 나가던 곳이라, 명절이나 제사날이 오면 소꾸모티 사람들은 거기 가서 장을 보았어요. 한번은 엄마를 졸라서 장보러 가시는 길에 따라붙었어요. 기억이 확실하진 않으나 아마 그 때 내가 3살이나 4살이었던 것 같아요. 함께 걸어가면서 엄마가 몇번이나 당부하셨어요.
“야야, 내 손을 절대 놓지 말아라. 글쿠, 정신을 엉뚱한 데 쏟지 말고 엄마 옆에만 있기라이. 장터는 정신없는 곳이라 아차함 엄마 잃어뿐다.”
그래, 내 딴에는 고사리같은 손으로 엄마손을 꼭 쥐고 따라다녔어요. 근데, 생전 처음 직지내를 건너 장터를 가니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신기한 것 투성이에요. 눈이 똥그래져서 사방을 살피며 시장을 공부하다보니 완전히 정신이 나갔던 것 같아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발길 닫는 대로 다녔어요. 그런데, 큰 일이 났어요. 내 딴에는 엄마손으로 알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간다고 생각했는데, 어째 기분이 이상해서 돌아 보니 엄마가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엄마 손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무 손도 잡고 있지 않았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바깥 세상에 처음으로 나왔던 꼬마가 엄마를 잃어 버렸으니 어떻게 되었겠어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져서 정신이 공황상태로 들어갔지요. 있는 대로 목청을 돋우고 엄마를 불러재끼며 사방을 헤매고 다녔어요. 좌우간 해서는 안 될 일만 골라가며 한 셈이에요. 엄마 같아서 다가가 “엄마”하면, 휙 돌아보는 얼굴이 아이고 다른 아줌마에요. 이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때 어떻게 촌 아줌마들은 하나같이 엄마로 보였던지 지금도 수수께끼에요. 불안하고 초조해지니까 배는 더 고파오고 눈에서는 눈물이 질질 흘렀어요. 그러기를 두세시간은 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엄마가 나를 찾아내셨는지 몰라요. 엄마를 보자마자 나는 정신없이 붙잡고 울어 재끼기만 했어요. 내가 하도 울음을 거치지 않고 악을 쓰니까, 엄마가 나를 달래려고 속이 노랗고 조그마한 망고수박을 하나 사 주셨어요. 이게 내 평생 처음으로 먹은 망고수박이에요. 참 나도 웃기는 것이, 그렇게 섧고 무섭더니 망고수박 하나를 손에 쥐니까 저절로 눈물이 뚝 끊어졌어요. 그래, 한 손은 엄마의 손을 잡고, 한 손은 망고수박을 들고 그 놈을 베어 먹으며 소꾸모티로 돌아오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수박이 어찌 그리 달고 맛있는지, 금새 장터에서 엄마 잃고 웋던 악몽을 깨끗이 잊어 버린 거에요. 그 맛을 잊지 못해서 그 다음부터는 엄마가 장에 가신다고 하면 어떡하든 따라 붙일려고 기를 쓰곤 했어요. 불행히도 엄마는 또 아들 잃어 버릴까 봐, 나를 데리고 가지 않으셨어요. 그래 나는 망고수박을 그후 다시 먹을 기회를 얻지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