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8
나의 이야기 (18) 어느 그믐날 사건- 1963년 김천중학교 1학년
울 아부지 함 내게 떠 오르는 기억이 몇 개 있지만 그 가운데 두 가지만 오늘 나누려 해요. 첫째는, 비상한 기억력과 연산능력이에요. 늦게서야 공부를 하고 계획에 없던 학자가 되어 25년간 교수생활을 하느라, 머리 비상한 양반들 많이 겪었어요. 그러나, 이 부분에 관해서는 울 아부지만한 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거기에 비하면 제 기억력과 연산능력은 한참 떨어져요.
근데, 기억력 좋은 게 항상 좋은 것은 아니더군요. 제가 어릴 때부터 아부지를 보면서 답답해 하던 부분 중 하나가, 어째 울 아부지는 엿공장을 운영하시면서 남들 다 기록하는 장부를 기록하지 않으셨던 거에요. 당시 거래는 모두 외상으로 거래처에 팔고 그 다음 물건을 팔 때, 밀린 대금을 받는 신용거래였어요. 근데, 울 아부지는 외상장부라는 것을 기록하지 않으셨어요. 그게 내게는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중학교 들어가니 내딴에는 사업 눈이 좀 뜨여서 11살짜리가 지 아부지한테 이렇게 따졌어요.
“아니, 아부지 외상 주고 장부도 안함 나중에 거래선에서 오리발 내 밀면 우깔라 캅니까?”
“니는 모름 가마이 있기라. 나는 10년이 지나도 그때 뭔 말했는 거까징 다 기억한다 아이가. 지들이 오리발을 내밀 수가 없는기라. 그날 뭔 일이 있었는지 모든 걸 고대로 얘기하는데 지들이 양심이 있지, 안 갚고 배기나. 내 장부 안해서 돈 몬 받은 일 한번도 없다.”
아부지 대답이었어요. 울 아부지 학교 문턱에도 가지 않으셨지만, 기억력과 연산능력은 슈퍼컴 수준이셨어요. 오후 3시 정도이면 엿 생산이 마무리되는데, 다 달인 엿이 몇 통인지 척 보시기만 해도 그날 이문이 얼마나 생겼는지 정확하게 아셨어요. 그래, 내가 장부 건으로 암만 쪼아도, 울 아부지는 외상장부를 기록 않는 일에 관한 한 양보를 않으셨어요. 그게 왜정 때 대구에서 고철과 엿을 취급하시면서 일본상인들과 하시던 신용거래방법이었기 때문이에요.
“하이고, 우리 아부지 참말로 답답하네. 아부지가 마르고 달토록 살 것도 아인데, 가시고 남 우짤라고 카는지 참.”
일찍 철 들었던 꼬마가 속으로 한 말이에요. 그래도 어쩝니까, 아부지 말씀이 그런데 입 닫아야지요. 지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 말에는 항상 순종하는 바보였거든요. 그래, 아부지께서 하지 않으심 내라도 해야지 생각해서 나중에 내가 엄마한테 물어서 장부를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수금하러 갈 때 그걸 가지고 갔어요. 왜냐 하면 울 아부지는 마음이 너무 착하고 여리셔서 거래선에 수금하고 가셨다가도 그 집 형편이 어려우면 말도 않으시고 그냥 돌아오시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에요.
“아, 시상에 자기 돈도 몬 받아오는 양반이 뭔 장사를 한다꼬.”
바로 이게 두번 째로 내가 아부지한테 불만이 많았던 부분이에요. 그때가 내가 김천중학교 1학년이었을거에요. 우리 엿공장 사업에는 1년에 대목이 두번 있었는데, 한번은 추석 직전이고, 한번은 섣달 그믐 직전이었어요. 추석과 설날 즈음해서는 과자공장에도 묽은 엿인 조청이 많이 팔리지만, 강정을 하기 위해 몰려 든 인파로 우리 집이 몇 일씩 복작거렸어요. 그 때가 되면 소매로 파는 거라 갚도 비싸게 현금으로 받을 수 있기에 한 몫 잡을 수 있는 날이었어요. 그래, 온 식구가 동원되어 정신 없이 돌아갔어요. 그러다, 그믐날 저녁이 되면 온 식구가 밀린 외상대금을 수금하러 시내의 모든 거래처를 돌았어요. 그믐날이 되면 그간 밀린 외상대금을 모두 갚는 것이 상행위의 관례여서, 이날을 놓치면 그 다움해 그믐까지 기다려야 했어요. 근데, 그해부터는 몇 군데 거래처에는 울 아부지는 수금하러 가시지 않도록 했어요. 왜냐 하면, 아부지 마음이 여린 것을 익히 아는 악덕업주들이 아부지 오시면 미리 연막을 치고 죽는 소리를 늘어 놓았고, 울 아부지는 수금하러 가셨다가도 그 집 형편이 어려운 것을 보심 말도 안 꺼내고 돌아 오시곤 했기 때문이에요. 답답했던 것이, 울 아부지는 한번 그런 일을 겪은 거래처에는 다시는 가지 않으셨어요. 그래 아부지께서 가지 않으시려는 거래처는 모두 엄마와 내 몫이 되었어요. 그 중 하나가 아래장터에 큰 가게를 가진 과자공장이었는데, 내가 가면 돈을 안 내 놓곤 못 배겼어요. 그래, 거래처마다 내 소문이 희한하게 났어요.
“세상에, 저런 지독한 놈이 있나. 어째 지 아부지와는 완전 딴 판일세. 저 놈이 뭐 될라고 벌써 저래 지독할꼬.”
내가 우쨌길래 이런 소문이 돌았는지 아시는가? 내 전략은 다른 거 없었어요. 바로 거머리 전략으로, 내가 후일 삼성물산 주재원으로 뉴욕지사에 부임해서 강관 수입사업을 할 때에도 애용했던 수금전략이에요. 나는 소매장사가 한창 바쁜 초저녁에 가게로 쳐들어가서 가계 계산대 옆에 턱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장사하는 걸 옆에서 빤히 지켜봐요. 그믐이라 장사가 한창 바쁠 때인데 꼬맹이가 옆에서 빤히 지켜보고 있으니 그집 주인 기분이 아주 더러운기라. 외상값을 못 갚은지라 양심에 거리끼긴 하는데 막상 돈 주긴 싫은거에요. 근데 요 꼬맹이가 속을 박박 긁어대요. 가게에 진열된 과자 중 값이 나가는 놈만 골라서 들고 한 마디 해요.
“아재요, 이거 참 맛있어 뵈네요. 지가 저녁도 몬 묵고 와서 배가 고프네유.”
그럼 자기도 위신과 양심이 있지, 그걸 먹지 마라 칼 수 있겠는가? 속이 비틀리지만 이렇게 대답해요.
“하마, 니 묵고 싶은 대로 묵으라. 니가 묵어 봤자 얼매나 묵겠노.”
그럼 과자를 왼손에 한 움큼 움키고 오른손으로 하나씩 집어 “바삭바삭” 소리내 씹으면서 손님 들어올 적마다 한 마디 툭툭 던져요.
“아이고, 장사 잘 되네요. 오늘 얼매나 벌었어유?”
이걸 몇 시간이고 하니 버틸 재간이 없지요. 우리 돈 안 갚고 못 배기지요. 이 바람에 울 아부지의 약점을 악용하는 악덕업주를 징계하는 몽둥이 역할을 한 착한 나는 거래처 간에 고약한 소문이 났구요.
“아니, 지들이 줄 돈 내고서 왜 받을 거 받은 날 보고 그 따우 헛소리를 해 대나. 참, 웃기는 양반들 아이가.”
11살짜리 꼬마가 툴툴대며 혼자 했던 말이에요. 그래 그후에는 제가 수금하러 가서 제가 기록한 장부를 들이 대면 알아서 밀린 외상값을 내놓았어요. 이렇게 외상대금을 수금해 가서 엄마에게 척 내 놓는 그 기분 끝내줘요. 그럼,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세요.
“야가 진짜 장사꾼이네.”
후일 삼성물산에서 강관수출로 유명해져서, 입사한지 4년도 안 되어 뉴욕지사로 파견되어 업계를 휘저었던 저력은 이미 이 때부터 나타났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