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욕판 1월 16일 자 종교란 칼럼에 실린 기사입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직접 갑니다.
http://ny.koreatimes.com/article/articleview.asp?id=36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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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니 우리 집이 꽤 분주해졌다. 20여년만에 아내의 친구부부가 오랜 외교관 생활을 쉬고 1년간 안식차 와서 이웃에 작은 둥지를 튼지가 1주일밖에 안되었는데 이틀 전에는 서울에서 처조카가 반년간 언어연수차 왔다. 분주하긴 해도 이득도 있다. 그동안 큰 집에 세 식구가 살려니 썰렁했는데 황소만한 청년이 두 명이 되니 집이 그득한 것이 사람 사는 것 같다.
오늘 아침 조카를 그냥 뻐스로 보내려다가 첫날 오리엔테이션이고 해서 내가 운전해서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주차를 하고 오리엔테이션 건물로 가는데 바로 앞에 내 조카 아이와 비슷한 차림새의 동양청년 둘이 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건물 들어가기 전에 담배를 한 모금이라도 더 빨려고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빡빡 빨아대면서 걷고 있었다.
그런데 건물에 들어가기 직전에 이들이 취한 행동이 나를 아연케 했다. 건물입구에 담배꽁초를 버리라고 일부러 쓰레기 통을 놓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든 담배꽁초를 사정없이 바닥에 패대기치고는 기세좋게 문을 열고 들어 가는 것이다. 이쯤 얘기하면 내가 왜 이 글을 쓰는지 현명한 독자는 짐작하실 것이다. 이런 광경을 연출하는 동양청년이면 십중팔구는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안에 들어가니 유학생들 중 반은 동양인이고 아까 그 학생들을 비롯해서 상당수가 한국아이들이었다.
뉴저지의 한인상가밀집지역인 팔팍에서 사업을 하는 분이 속이 상해서 내게 얘기한 것이 기억이 난다. 바로 옆에 젊은 한인청년이 차를 빼고 있는데 이 사람 출발직전에 문을 열더니 먹던 콜라병을 바닥에다 내려놓고 가더라는 것이다. 이 분과 내가 겪은 일은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인구유입이 많은 곳일 수록 이런 추한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는 것이 미국에서 오래 살며 자녀를 이 곳에 키운 부모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왜 이들이 이런 얌체짓을 골라가며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를까. 신년하례로 모인 동역자들의 의견을 들어 보았다. 공통적인 의견은 한국교육제도의 근본적인 실패에서 인한 것이라는 결론이다. 대학입학에 인생의 사활을 걸다 보니 대학을 가기까지 아들은 왕자로 딸은 공주로 자기밖에 모르는 망난이로 키웠다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훈육이 학교와 가정에서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의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도 이러한 풍토에서 자란 소위 386세대가 정권의 핵심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죄 중에 직무유기라는 것이 있다. 가장 소중한 역할인 훈육이라는 직무를 유기하고서도 떳떳이 부모라고 선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대한민국 전체가 자녀훈육 직무유기죄로 비틀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새해에 내 심장을 때린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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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y.koreatimes.com/article/articleview.asp?id=36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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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니 우리 집이 꽤 분주해졌다. 20여년만에 아내의 친구부부가 오랜 외교관 생활을 쉬고 1년간 안식차 와서 이웃에 작은 둥지를 튼지가 1주일밖에 안되었는데 이틀 전에는 서울에서 처조카가 반년간 언어연수차 왔다. 분주하긴 해도 이득도 있다. 그동안 큰 집에 세 식구가 살려니 썰렁했는데 황소만한 청년이 두 명이 되니 집이 그득한 것이 사람 사는 것 같다.
오늘 아침 조카를 그냥 뻐스로 보내려다가 첫날 오리엔테이션이고 해서 내가 운전해서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주차를 하고 오리엔테이션 건물로 가는데 바로 앞에 내 조카 아이와 비슷한 차림새의 동양청년 둘이 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건물 들어가기 전에 담배를 한 모금이라도 더 빨려고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빡빡 빨아대면서 걷고 있었다.
그런데 건물에 들어가기 직전에 이들이 취한 행동이 나를 아연케 했다. 건물입구에 담배꽁초를 버리라고 일부러 쓰레기 통을 놓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든 담배꽁초를 사정없이 바닥에 패대기치고는 기세좋게 문을 열고 들어 가는 것이다. 이쯤 얘기하면 내가 왜 이 글을 쓰는지 현명한 독자는 짐작하실 것이다. 이런 광경을 연출하는 동양청년이면 십중팔구는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안에 들어가니 유학생들 중 반은 동양인이고 아까 그 학생들을 비롯해서 상당수가 한국아이들이었다.
뉴저지의 한인상가밀집지역인 팔팍에서 사업을 하는 분이 속이 상해서 내게 얘기한 것이 기억이 난다. 바로 옆에 젊은 한인청년이 차를 빼고 있는데 이 사람 출발직전에 문을 열더니 먹던 콜라병을 바닥에다 내려놓고 가더라는 것이다. 이 분과 내가 겪은 일은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인구유입이 많은 곳일 수록 이런 추한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는 것이 미국에서 오래 살며 자녀를 이 곳에 키운 부모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왜 이들이 이런 얌체짓을 골라가며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를까. 신년하례로 모인 동역자들의 의견을 들어 보았다. 공통적인 의견은 한국교육제도의 근본적인 실패에서 인한 것이라는 결론이다. 대학입학에 인생의 사활을 걸다 보니 대학을 가기까지 아들은 왕자로 딸은 공주로 자기밖에 모르는 망난이로 키웠다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훈육이 학교와 가정에서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의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도 이러한 풍토에서 자란 소위 386세대가 정권의 핵심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죄 중에 직무유기라는 것이 있다. 가장 소중한 역할인 훈육이라는 직무를 유기하고서도 떳떳이 부모라고 선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대한민국 전체가 자녀훈육 직무유기죄로 비틀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새해에 내 심장을 때린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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