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13일 “훗다군두루에서 이르디닛까지”
훗다군두루에서 하룻밤을 지낸 호텔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눈을 뜨니 아침 6시가 조금 넘었다. 4시간 정도 잠을 잔 것이다. 에어컨이 고장 난 차라 해가 뜨겁지 않을 때 출발하기 위해 짐을 차에 싣고 나서 잠시 밖에서 운동을 하는데 동네 개가 한 마리 오더니 내 앞에서 꼬리를 흔들며 쳐다 본다. 전형적인 몽골 개로서 털이 까맣고 눈 위에 갈색 점이 두 개 있어 꼭 눈이 네 개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네눈박이라고 부른다고 하는 개이다. 아마도 먹을 것을 달라고 왔나 본데 내게 줄 것이 없으니 방법이 없었다. 그래 계속 운동을 하려 했더니 갑자기 달려 들었다. 발길로 걷어차니 이 놈이 한 발 자국 물러서서 틈을 노리는 것이 나를 만만한 대적상대로 보고 한 바탕 싸우겠다는 기세이다. 그래 둘이 대치하고 있는데 10미터 전방에 개 2마리가 이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야 이거 이러다가 봉변 당하겠다" 싶어 개를 발길로 걷어차니 약간 물러나기에 돌을 주워서 집어 던졌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달아났다. 엊그제 훕스굴 가는 길에 게르를 방문했을 때 몽골인 청년이 돌멩이를 집어 던져서 개를 쫒는 것을 보고 배운 것을 써 먹었던 것이다.
한 가지 또 배웠다. 몽골에서 개를 만났을 때에는 돌로 쫓으라. 맨 몸으로 공격하면 이 놈들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다. 과거 러시아 인들이 몽골을 지배하는 동안 데리고 온 개들이 많아 이들이 떠난 후 주인 없이 길거리를 떼를 지어 다닌다. 누가 먹을 것을 챙겨 주지 않아 항상 배가 고프기 때문에 동네를 배회하며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을 것을 찾는다. 그러다가 사람이 혼자 있으면 먹을 것이 있나 하고 쳐다 보다가 갑자기 습격하곤 한다고 했다. 특히 겨울철에는 혹한 속에 생존하기 위해 수십 마리가 떼거리로 돌아다니는데 굶주림과 혹한으로 인해 개들이 반쯤 미친 상태라고 했다. 외국인들이 몽골에 와서 조심해야 할 것 중에 하나이다. 과거 림준호 선교사 사모인 박정자 선교사는 개에게 물려서 오른 쪽 다리의 힘줄을 상할 정도로 큰 부상을 당했다.
개를 쫓고 나서 호텔 로비 쪽으로 오니 말다툼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유니스와 왠 몽골 젊은이가 아침부터 시비가 붙은 것이다. 이 젊은이가 아마 지난 밤에 술을 먹고 시끄럽게 했던 친구인가 본데 아침부터 술이 취해서 시비를 걸어 온 것이다. 처음에는 임 선교사에게 영어로 몇 마디 하는데 임 선교사가 몽골 말로 계속 대답을 하니까 김이 새었나 보았다. 울란바타르에서 온 친구인데 한국말도 몇 마디 하고 영어도 몇 마디 하는 것이 아주 못 배운 사람은 아니었다. 지방도시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이렇게 막나가는 젊은이가 많지는 않은데 문제는 울란바타르 젊은이들이다. 별 볼 일도 없는 친구가 과시욕은 있어서 자기 실력을 과시하려 했는데 씨가 안 먹히니 행패를 부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던 것이다. 같은 몽골 젊은이가 아침부터 술주정하는 것이 유니스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유니스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고함을 지르는 것을 뜯어 말리고 출발하니 아침 7시였다. 몽골에 와서 느낀 것인데 참 몽골 남자들 다혈질이고 호전적이다. 아침부터 술에 취한 꼴도 꼴불견이고 술을 먹었으면 얌전히 있을 것이지 왜 객기는 부리는 것인가? 오직 못 났으면 여자에게 그것도 자기 엄마 또래의 여자에게 싸움을 거는가 말이다. 평소에는 여자들에게 고양이 앞에 쥐처럼 움추리는 자들이 술기운을 빌어서야 여자들에게 대드는 모습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거기에다 자신보다 조금만 약자로 보이면 사정없이 강탈한다니 이 사람들 언제 제 정신이 들지 모르겠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정신 나간 청년들이 많다는 것이다.
5시간 정도 운전하니 볼강이 보인다. 볼강은 인구가 1만 3천에 달하는 소도시이다. 올해가 이 도시가 설립된 지 70년이라 이번 나담 축제는 70주년 기념축제로 가장 성대하게 치르고 있다. 이 곳에는 우리 교단의 Jeremy와 Renee 선교사가 네 딸과 함께 집을 짓고 거주하고 있다. 교회개척을 목표로 이 곳에 집을 짓고 작년부터 거주하고 있으나 아직 Core Group 이 형성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집은 통나무로 근사하게 지어서 살기에 쾌적해 보였으나 겨울에는 엄청나게 추워서 고생이 많다. 1달에 난방비만 미화 4백 불이 든다니 이 집을 유지하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 볼강의 애이락은 맛과 질이 좋기로 소문났기 때문에 잠시 이 곳에서 쉬며 애이락을 몇 병 사 가기로 했다. 이왕이면 나중에 전도를 할 계기도 마련할 겸 지난 번 들러서 애이락도 사고 점심식사도 했던 게르에 들렀다. 게르에 들어가기 전에 급선무가 있어서 화장실이 어디 있냐고 물으니 유니스가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킨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그저 평평한 광야 밖에 없다. 유목민들이 사는 게르의 경우 온 천지가 화장실이다. 물론 화장지도 없다. 그래서 중국에서 배운 대로 나는 항상 화장지를 주머니에 휴대할 뿐 아니라 화장지 꾸러미 하나를 통째로 가방에 넣고 다닌다.
아주머니에게 애이락을 4병 달라고 하니 애이락을 병에 붓고 성냥개비 두 개씩을 집어 넣는다. 왜 그러는지 물었더니 이렇게 하면 쓴 맛이 없어져서 마시기에 좋다는 것이다. 아마도 성냥에 있는 유황성분이 쓴 맛을 중화시키나 보았다. 마루에 앉아서 애이락을 한 잔 마시노라니 지난 번 내 앞에서 한국동요를 불렀던 여자아이가 내 옆에 달랑 앉는다. 그러더니 자기도 애이락을 한 잔 마시는데 솜씨가 프로급이었다. 애이락은 이렇게 어린 아이 때부터 몽골인들이 마시는 건강음료이다. 한 가지 실망스러운 일이 있었다. 나흘 전 들렀을 때에는 한 병에 1천 뚜구루 (미화 1불)하더니 그새 50퍼센트 값을 올린 것이다.
포장한 지 8개월 밖에 안된 길을 신나게 질주하던 중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말이 두 마리나 차에 부딪쳐서 죽어 자빠져 있는 것이다. 보아 하니 한 마리는 친 차가 서지도 않고 뺑소니를 친 것 같고, 한 마리는 목동이 보는 앞에서 사고가 나서 운전자가 목동과 어떻게 보상할지 협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몽골에 와서 운전을 하면서 수많은 짐승들을 도로 위에서 조우했지만 실제로 짐승이 차에 치어 죽은 꼴은 처음 보았다. 왜 다른 곳에서는 이런 사고가 잘 나지 않는데 유독 볼강 근처에는 이런 사고가 많은 나는 것일까? 다 이유가 있다. 볼강 직전까지는 포장되지 않은 길에서 짜증 속에 이를 갈던 운전자들이 간만에 길다운 길을 만나니 제 세상을 만난 듯 가속을 하다 보니 말들이 자주 길을 건너는 볼강에서 말을 보고도 미쳐 정차를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삼한기업이 길을 너무 잘 깔아서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도로가 모두 포장되면 짐승들의 희생도 날로 증가할 것이다.
몽골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누구나 길을 건너는 짐승들로 인해 차를 세워야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외적인 지역은 수도인 울란바타르 근교와 목축이 불가능한 사막지역 뿐이다. 며칠 전 울란바타르에서 이르디닛 오는 길에도 짐승들로 인해 차를 세운 것이 열 번은 되었던 것 같다. 잘 달리던 앞차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을 때에는 십중팔구는 앞에 짐승들이 가로 막고 있는 경우이다. 내가 소를 칠 뻔 했던 것만 해도 두 번이나 되었다. 차가 다가 갔을 때에 짐승들의 반응도 여러 가지였다. 양이나 염소란 녀석들은 차가 다가가면 길 위에서 엉거주춤하고 어쩔 줄 모른다. 그런가 하면 황소란 녀석들은 차가 다가 가면 외려 뿔을 드리대고 위협을 한다. 운전자가 아무리 경적을 울려도 우이동풍이다. 제 할 일 다하고 나서야 약 올리듯이 천천히 길을 건넌다. 그래도 다른 짐승들은 말에 비해서는 품행이 양반이다. 다른 동물들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반해 말이란 녀석은 지나 간 줄 알고 차를 전진하면 뒷걸음질쳐서 당황케 한다. 이 때는 별 도리가 없다. 차를 멈추고 않고 그대로 밀고 가는 성질 더러운 운전자들도 있었지만 대다수 운전자는 짐승이 지나 갈 때까지 기다려 준다. 몽골에서는 길을 막는 짐승들을 교통경찰이라고 부른다. 왜냐 하면 어떤 차든 정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몽골을 방문할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몽골에서 운전 중에 짐승을 만나거든 무조건 양보하시라. 말 못하는 짐승과 성질 내며 싸워 보았자 성질 내는 사람만 우습게 된다.
워낙 짐승들이 많다 보니 운전 중 피치 못하게 짐승을 치는 경우가 몽골에서는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이렇게 짐승을 친 경우 짐승의 주인들이 운전자에게 하는 말이 하나같이 걸작이다. 별 것도 아닌 것이 암컷의 경우는 하나같이 새끼를 제일 잘 낫고 젖이 잘 나오는 특상품으로 둔갑하고, 수컷의 경우는 씨를 받으려고 고이 모시는 종마나 종우로 둔갑한다. 어찌하랴. 이미 남의 가축을 치어 죽였으니 적당선에서 타협해서 보상하고 빨리 갈 길을 재촉할 수 밖에 없다.
죽은 말의 처참한 모습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해서 이르디닛에 도착하니 오후 2시였다. 3박 4일간 3천리 가까운 거리를 주파해서 돌아 온 것이다. 아스팔트 길, 진창 길, 자갈 길, 차가 못 다닐 길 좌우간 온갖 경험을 했다. 타이어가 한번 나가기는 했으나 그 정도면 편안한 여행이었다. 임 선교사의 아파트에 처음 왔을 때에는 황당하더니 긴 여정을 거쳐서 다시 돌아오니 편안한 것이 우리 집 같다. 아파트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훗다군두루에서 머리에 비누칠만 하고 말았던 샤워를 마치는 것이었다. 간단한 샤워 한번 하는 것이 이토록 개운할 줄이야 예전에 미쳐 몰랐다.
잠시 쉬다가 그 동안 이멜을 점검 못한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몽골 아가씨로 임 선교사 교회 일을 보고 있는 하나에게 부탁해서 오후 3시 경에 인터넷 카페에 갔다. 몽골의 정보통신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상당히 빠른 발전속도를 보이는 산업이다. 이 분야의 투자, 계획, 발전 정도가 올해 처음으로 아시아 10위권에 들어가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올해 몽골 투자를 결정했다. 이르디닛에는 인터넷이 몽골 최초로 들어온 도시답게 인터넷 카페가 여러 군데 있었다. 임 선교사 2 딸도 인터넷하러 간다니 신나게 따라와서 넷이 함께 시내로 걸어갔다. 카페 중 가장 속도가 빠른 카페에 갔더니 나담 축제기간이라 휴업 중이어서 근처에 있는 다른 곳을 갔다.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 20대에서 30대의 젊은이들이 카페를 가득 채우고 있어서 자리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 중에는 아이를 데리고 온 아주머니도 있었다. 옆자리를 보니 화상 챗팅도 하고 미국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시간당 1천 뚜구루 (미화 1불)래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멜을 점검하려니 어찌나 속도가 느린지 숨이 막혔다. 핫멜은 그래도 큰 문제가 없어서 아내에게 이멜 보내고 고시위원회 일을 챙겼는데 문제는 학교 이멜이다. 한 건 뜨는데 어떤 경우는 15분 이상이 걸리는 것이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서버가 문제인 듯하다. 1시간 반을 짜증스럽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우선 다급한 건만 이멜을 점검한 후 아파트로 돌아오니 벌써 저녁시간이 되었다. 어찌됐던 급한 일은 처리했으니 마음이 가볍다. 내주에는 임 선교사 댁에 고속 무선 인터넷을 설치할 예정이라 하니 덜 불편하리라. 임 선교사의 경우 여름 사역철이면 미국에서 단기선교 팀들도 다수 방문하고 목사님들의 방문도 잦기 때문에 통신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사역에 지장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