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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Oct
남고비에서 울란바타르로 9월 30일작성자: JintaeKim 조회 수: 716
간밤 추위에 오그리고 자다가 눈을 뜬 것은 새벽 4시 30분이었다. 다시 잠을 자려니 정신이 오락 가락하긴 한데 막상 잠은 안 오고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겨우 잠이 다시 드나 했는데 아침 경건의 시간 가지자고 옆방 어른들이 재촉해서 결국 잠을 포기하고 일어났다. 오전 10시에 투메네 가정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기로 했기에 일어나 근처에 있는 투메네 아파트에 도착했다. 반갑게도 어제는 못보았던 투메 남편 촐랑바타르가 우리를 반긴다. 새벽 1시 30분에 자밍우드에서 버스 편으로 도착했다고 한다. 촐랑바타르는 자밍우드 공산당 총서기 출신으로 이번에 자밍우드 시장에 출마하여 선거운동에 열심을 내고 있다. 아파트는 거실과 침실 1만 있었는데 침실은 다른 가정에 세를 주고 자신들은 거실에 살고 있었다. 투메네 가족 4인과 우리 일행 5인이 거실에서 드린 예배이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주일예배의 기쁨을 선사하셨다. 투메네 가족은 이 곳에 이사온 후부터 가정에서 주일제단을 쌓았다. 제단을 보니 그동안 주일헌금을 따로 모아 쌓아 놓았다. 자밍우드 교회를 다닐 때 임 선교사가 가르친 대로 주일헌금은 전도와 선교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이렇게 헌금을 쌓아놓았다가 전도여행경비로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쉬베고브로 이사 온 작년부터 지금까지 수차 전도여행을 다녀왔고 그 기록을 전도일지에 해 놓고 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제단에는 이 외에도 예배일지, 헌금일지, 감사일지가 차곡 차곡 쌓여 있었다. 어찌나 세밀하고 성실하게 기록을 해 놓았는지 보는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했다.
근처에 찾아 갈 교회 하나 없는 곳에 외따로 떨어져 있음에도 주님 섬기는 일과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투메네 가정을 보면서 새삼 이번 방문이 얼마나 중요한 방문인지 깨닫게 했다. 투메는 이미 곱숨비르 주의 유명연예인 9인 중의 일인으로 명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사 온지 불과 1년 3개월밖에 안되었는데 그 동안 내몽고에서 개최된 낙타 춤 대회에 학생들 20명을 데리고 출전하여 금메달을 따서 돌아 왔고 곱숨비르 주도인 초이르에서 개최된 각종대회마다 금메달을 휩쓸고 있다. 가르치는 학생들의 복음화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어서 이미 2명은 주님을 영접했고 만나기를 원하는 주민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한다. 쉬베고브 시는 주도인 초이르에서 불과 30분 거리에 위치한 도시로서 석탄탄광개발로 현재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는 도시이다. 탄광개발에 참여한 5개국이 국도에서 이 곳까지 길도 고속도로 수준의 길로 닦아 놓았고 주민들을 위한 각종 문화시설과 아파트를 신축하고 있어 이들 주민들을 위한 교회개척이 시급한 곳인데 이런 곳에 리더십이 탁월한 투메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 3년 전 오트고가 뭉크 한 사람을 전도함으로 인해 시작된 자밍우드 교회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은 탁월한 지도자들이 몰려 들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일당 백의 지도자감들이었는데 하나님은 이들을 몽골 각지로 파송하셨다. 이들은 모두 교회를 개척했거나 개척 작업을 하고 있다. 동광산개발로 발전하고 있는 남고비 항고브, 우르군, 생산, 달란자가드, 쪼그테쓸리, 만달고비, 곱숨비르 주도인 초이르, 아르항가이의 주도인 치칠릭.... 투메는 쉬베곱에 파송된 것이다. 이들은 이 모든 것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고 있다.
오늘 밤이면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출국해야 하기 때문에 갈 길이 급하여 원하는 만큼 함께 교제하지는 못하고 투메 가정에 전도용 성경을 전달한 후 어제 만나지 못했던 칭게를 찾아 초이르로 향했다. 미용실로 갔더니 마침 떠나려는 칭게를 만났다. 칭게를 따라 칭게가 임시로 거주하는 언니 어윤나의 아파트로 갔더니 칭게의 딸 오양가가 한창 아파트 청소를 하고 있었다. 14살 난 오양가는 우수학생만 다니는 특목교인 캠브리지 중학교에 다니는 소녀인데 한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재원이다. 어린 나이인데도 화요일마다 아파트에서 8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주일학교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믿음과 지혜가 충만하다. 칭게가 인도하는 초이르 교회의 교인 중 8명은 최근 개발된 오양톨고이 동광산에서 일을 하기 위해 떠나고 없는 상황이다. 초이르가 곱숨비르 주의 주도이지만 직장이 없는 곳이라 이 곳 주민들의 상당수가 오양톨고이에 가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몽골의 실정이다. 원래 1년에 20번 이상씩을 가축을 데리고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의 특성상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도 전혀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간단한 보따리 하나 꾸려서 타지로 떠났다가 일이 끝나면 돌아온다.
칭게와 함께 간단하게 예배를 드리고 나서 울란바토르로 떠나려 하니까 칭게가 세 목사의 이발을 해주겠다고 미용실로 가자고 한다. 임 선교사가 3년 전에 와서 8명의 교인을 세례 줌으로 교회가 시작되고 나서 처음 방문한 곳이라 시간은 없지만 뿌리치지 못하고 칭게의 가게로 가서 세 목사가 오랜만에 이발을 했다. 칭게가 깎고 딸 오양가가 머리를 감아주니 감흥이 특별하다. 이발을 하고 나니 칭게가 그 동안 읽은 성경책을 보여주었다. 3년 전 임 선교사가 선물했던 성경인데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성경이 모두 너덜 너덜해졌다. 말씀에 능력이 있으니 말씀묵상을 열심히 하라고 당부했더니 이 가르침을 그대로 순종해서 매일 성경말씀을 읽느라 성경이 다 해질 정도가 된 것이다. 칭게와 초이르 교회를 위해 기도한 후 오후 1시에 초이르를 떠나 점심식사를 할 여유도 없이 달려서 울란바토르에 도착하니 오후 6시 30분이었다.
지난 22일 동안 무지막지하게 넓은 지역을 망라했다. 얼추 계산하여 보니 6천 킬로미터 이상을 달렸다. 울란바토르와 이르틴을 동서로 왕복한 것만 해도 세 번이고, 울란바토르에서 자밍우드를 남북으로 왕복했고, 울란바토르에서 아르항가이의 주도인 치칠릭을 왕복했고, 이번에는 울란바토르에서 남고비 쉬베곱을 왕복했다. 놀라운 것은 가는 곳마다 교회가 개척되었거나 개척단계에 있는 것이다. 지난 2008년 임 선교사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하는 시점에 나도 중국을 거쳐 몽골로 가서 함께 여행하며 몽골복음화에 대해 협의했는데 그 때만 해도 몽골에 세워진 교회는 울란바토르와 다르항, 이르틴 세 곳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교회개척의 역사는 2008년 임 선교사 부부와 함께 몽골선교여행을 한 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방문했던 곳마다 교회가 개척되었다. 불과 3년 동안에 개척된 교회만 해도 16교회가 넘으니 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다. 몽골선교는 이제 가속단계에 들어갔다. 외국인의 전도에 의한 선교가 아니라 이미 세워진 몽골교회에서 지도자를 발굴하여 훈련시킴으로 몽골인에 의한 몽골선교를 해야 하는 단계이다. 선교학적인 표현으로 “Missiological breakthrough” 가 이루어져야 하는 단계라는 말이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이들을 훈련할 것인가이다. 임 선교사 부부는 개척자이다. 주님이 보내시는 곳이면 무조건 가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감당한다. 그러나 세워진 교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지도자를 세우는 사역까지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누군가가 가서 이들을 훈련해야 하며 이에는 상당한 선교비가 필요하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어떠한 방법으로 이들을 훈련할 것인가이다. 유목민의 특성상 이들을 모아서 학교 스타일로 지도자 훈련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보다는 가르칠 사람이 주기적으로 순회하며 한 과목씩 가르치는 방법과 1년에 2번 정도씩 한 곳에 소집하여 집중 교육하는 방법을 겸해야 한다. 문제는 네 가지이다. 첫째는 혹한이 7개월 이상 계속되는 몽골의 특성상 1년에 여행할 수 있는 계절이 4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한번 기회를 놓치는 1년을 놓치는 것이요, 둘째는 임 선교사 부부가 감당하기에는 지역이 너무 방대한 것이요, 셋째는 교단에서 지원하는 사역비가 실제 드는 비용에 비해 태부족이어서 개인적으로 선교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요, 넷째는 몽골인 지도자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사역자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번에 와서 지도자들에게 내가 가르친 것은 엄청난 규모이다. 불과 나흘 동안 교단신학 개관과 성경개관과 설교학까지 가르쳤으니 이것만 해도 어느 정도 사역의 기본은 가르친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단발성으로 끝나서는 제대로 된 지도자 훈련이 될 수 없다. 나는 다른 지역은 몰라도 몽골지역은 우리 한국인들 특히 한인총회가 감당해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