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리 한담 (4) 이아고 신드롬

by 김진태 posted Sep 2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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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10일 한국일보 미주판 A 13 종교인 칼럼에 게재된 글입니다.

제목: 포트리 한담 (4) 이아고 신드롬
필자: 김진태 목사 (얼라이언스 신대원 교수)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비극적인 것은 역시 오셀로이다. 오셀로의 주인공은 제목을 보아서는 무어인 출신의 사이프러스 총독 오셀로이지만 실제 그 내용을 보면 이아고가 주인공이다. 사실 대다수의 작중인물들은 이아고의 궤계에 속아서 악을 행하고 파멸의 구덩이로 줄달음치는 꼭두각시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셀로의 흥행성은 바로 이아고의 역을 누가 맡느냐에 달려있다.

 

왜 이아고라는 작중인물이 이토록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가? 우선 이아고의 특성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핌으로써 그 답을 구해보자. 첫째, 이아고는 스스로 속이는 자이다. 1장에 보면 이아고가 상관인 오셀로를 멸망에 빠뜨릴 궁리를 하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핑게가 걸작이다. 자신이 장교로 진급될 기회를 오셀로의 충직한 부하 카시오에게 빼앗겼다는 것이다.

 

둘째, 이아고는 자기의 계책을 달성하기 위해 항상 생각이 부족하거나 약점이 있는 인물을 택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도록 배후에서 조종한다. 이른 바 차도살인의 명인인 것이다. 오셀로의 아내 데스데모나를 연모하는 로드리고라는 자를 꾀어서 카시오를 공격하게 하여 카시오의 다리를 절단하게 하고 부상입은 로드리고의 입을 막기 위해 찔러 죽인다. 의롭고 용맹한 장군 오셀로도 예외가 아니다.

 

셋째, 이아고는 온갖 궤계를 동원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시켜 결국 파멸로 몰고 갈 뿐 아니라 자신도 이로 인해 파멸한다. 데스메모나의 손수건을 카시오의 방에 떨어뜨림으로 인해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한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자결하게 만든다. 뿐 아니라 이아고 자신도 이로 인해 비참한 죽음을 맞고 만다.

 

그러면 이아고가 이러한 악행을 통해 얻은 이득은 과연 무엇인가? 이것이 수수께끼이다. 그래서 저명한 영문학자 콜러리지 같은 이는 "동기없는 동기"라고까지 표현했다. 가장 간교한 듯하면서도 실상은 주위 사람을 멸망하게 하고 자신도 멸망하는 바보같은 짓을 범하는 어리석은 자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자에게 속아서 멸망하는 로드리고나 오셀로는 더욱 어리석은 인물들이다. 이아고가 악행을 통해서 얻은 것이란 로드리고와 오셀로를 속여 멸망하게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쾌감 하나밖에는 없다.

 

이러한 악인 역에 이토록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가? 아니 많은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을 지녔는가? 이에 대한 답을 창세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아고의 역은 창세기에 나오는 마귀와 너무도 흡사하다. 마귀의 원래 이름은 루시퍼였으나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그 이름이 사단이 된 자이다. 히브리어로 사단은 반역자란 뜻이다. 사단은 에덴동산에서 생각이 부족한 이브에게 하나님을 의심하는 마음을 불어넣어 선악과를 취하게 하여 그 남편 아담이 이를 함께 먹도록 했다. 이로 인해 인류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신뢰의 관계가 깨어졌고 결국 이는 인간관계의 파국을 몰고 왔다. 남편과 아내 사이가 갈라졌고 형제간의 불화와 전쟁으로 점철되는 인류사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사단을 디아볼로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디아볼로스는 희랍어로 쐐기 혹은 이간질하는 자란 뜻이다.

 

사단의 또 하나의 이름은 아폴리언이다. 이 말은 멸망시키는 자란 뜻도 되고 스스로 멸망하는 자란 뜻도 된다. 왜냐 하면 마귀는 이브를 범죄하게 함으로써 예수 없는 인간의 실존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귀 자신도 마지막 날 그들과 함께 지옥 불구덩이로 던져지고 마는 멸망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마귀의 속성이 우리 안에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이아고의 독백과 연기를 보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아고의 음모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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