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리 한담 (7) 땡감과 홍시

by 김진태 posted Nov 2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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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감과 홍시

아마 중학교 다닐 때였던 같다. 유별나게 추운 겨울날 고향에 결혼잔치가 있어서 하루 밤을 친척집에서 자고 왔다. 심심산골의 겨울밤은 특별히 운치가 있다. 밖에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문풍지를 할퀴는 밤이지만 오랜만에 또래들이 모인 방안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가 있다. 군불을 뜨끈뜨끈하게 집힌 방에서 화로에 밤을 구워먹기도 하고 김치단지를 열고 동치미를 한 그릇 시원하게 마시기도 하면서 오랜만에 만난 또래들과 촌수 관계없이 친구가 되어 화투놀이를 하거나 구수한 이바구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이런 겨울밤 명물은 뭐니뭐니 해도 아이스 크림보다도 더 달고 시원한 홍시를 먹는 것이다. 가을에 발갛게 익었던 홍시를 헛간 보리겨 더미 속에 묻어두었다가 겨울밤에 꺼내 먹는 것인데 입에 넣으면 스르르 녹는 그 맛이 둘이 먹다가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기가 막힌다.

그런데 이런 홍시는 당감으로 만들지 않고 땡감으로 만든다. 당감은 이름 그대로 처음부터 떫지 않아서 언제든지 나무에서 따서 먹을 수 있으나 땡감은 그 맛이 너무 떫기 때문에 그냥은 먹을 수가 없다. 성미가 급한 사람은 여름에도 퍼런 땡감을 따서 소금물에 담구어 떫은 맛을 제하고 먹기도 하지만 그래 가지고야 홍시의 단 맛을 낼 수는 없다. 그래서 맛있는 홍시를 먹으려면 먼저 여름 내내 뜨거운 태양아래서 떫은 맛이 강해진 땡감이 늦가을까지 나무에서 잘 익혀져서 색깔이 발갛게 되도록 기다려야 한다. 나무에 오래 둘수록 맛은 좋으나 겨울이 오면 얼어버리거나 그 전에 꼭지가 떨어져서 추락해 버리기 때문에 색깔이 잘 변했으면 일단 따다가 헛간의 보릿겨 속에서 얼지 않고 잘 숙성시켜서 떫은 맛이 단 맛으로 바뀌게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잘 숙성된 것을 동짓달 긴긴 밤에 꺼내 먹으면 일미중의 일미가 된다. 일단 이렇게 잘 숙성된 땡감출신 홍시는 그 맛에 있어서 당감이 감히 따를 수가 없다. 당감은 따가지고 바로 먹어야지 오래 두면 물러서 먹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겨울밤의 일미는 역시 오래 숙성시킬수록 달고 시원한 맛을 내는 땡감출신 홍시이다.

어제 교회에 설교하러 가는 길에 함께 갔던 목사님과 얘기를 나누던 중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떫은 맛이 강한 땡감일수록 더 달고 맛있는 홍시가 된다고 한다. 우리 인생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땡감처럼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잘 숙성하면 홍시처럼 그 인품과 삶을 통해서 달고 시원한 맛을 낸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 큰 일을 감당한 사람들 가운데는 이렇게 고난을 통해 승화된 인물들이 많다. 요셉은 십칠세에 형들의 음모로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갔지만 이를 통해 오히려 인품이 승화되어 약관 30세에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애굽을 구하고 자신을 팔았던 형들을 용서하고 구원한 홍시같은 인물이다. 다윗도 충성스레 섬겼던 사울 왕에게서 배반당하고 갖은 고난 끝에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었다. 그래서 선한 일을 하느라 극심한 환난을 당했던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가 환난가운데서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은,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당신은 지금 어떠한 환난 가운데 있는가? 기억하시라. 이 모든 것이 당신을 아름답고 맛나는 홍시같은 인품으로 승화시키는 하나님의 숙성의 과정인 것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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