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리 한담 (40) 눈이 와도 문제없다

by 김진태 posted Dec 0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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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눈을 떳더니 창밖으로 보이는 이웃집 지붕이 온통 은백색이다. 아, 첫눈이 오고 있구나. 똑같은 첫눈이지만 첫눈에 대한 감상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3년전 아파트에 살 때에는 눈이 오면 그저 기쁘기만 했다. “눈이 나리네”로 시작되는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리며 나오던 것이 포트리로 이사온 후부터 변했다. 왜냐 하면 눈이 오면 세 가지 번거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드라이브웨이와 현관앞에 있는 눈을 치우느라 허리가 부러지는 노역 때문이요, 둘째는 내 삶의 일부가 된 아침 숲길 산책이 어렵기 때문이요, 셋째는 그동안 동역자들과 매주 가는 산행에 애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상황이 달랐다. 오히려 눈이 오기를 고대했다는 표현이 옳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미 방한방수 산행부츠와 내복과 하의를 어제까지 다 구비를 했기 때문이다. 눈이 올 경우를 대비해서 산책과 산행을 할 준비를 다 갖추고 나니 언제 이것들을 사용할 수 있을가 하고 눈을 고대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옳다. 어제 밤은 산행용 내의에서 염료냄새를 없애기 위해 주물러서 빨래까지 해서 잘 걸어놓고 잤는데 이렇게 눈이 나리니 반가울 수 밖에 없다. 기분좋게 한눈 더 붙이고 산행부츠와 바지를 껴입고 아침 숲 산책을 가는 발걸음이 어찌 가볍고 상쾌했는지 모른다. 산행부츠가 무겁기 짝이 없고 눈온 뒤 이슬비로 질척질척한 길바닥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꼭 새 차를 빼 내어 시운전을 하는 기분이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서 마음속에 떠 오르는 수상이 있다. 내가 눈앞에 닥쳐온 눈내린 산야라는 도전에 두려움없이 오히려 기쁨으로 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를 위해 대비하고 준비를 끝낸 상태였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신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비슷한 체험을 한다. 학교에서 말씀공부와 전하는 일에 잘 훈련받은 목회자는 그동안 힘써 준비한 실력을 발휘할 순간을 고대한다. 반면 게으름 피우다 말씀공부와 전하는 일에 훈련되지 못한 목회자는 막상 목회현장에 임할 때에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인다. 준비되지 않은 재목이다 보니 잔재주로 목회를 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뒤 끝이 좋지 않다.

이는 꼭 목회현장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가정을 꾸릴 만한 정신적, 육신적, 영적 준비를 갖추지 않은 자가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사를 대했을 때도 마찬 가지이고, 그릇이 준비되지 않은 자가 큰 감투를 썼을 때도 마찬 가지이다. 그러다 보니 일국의 대통령이란 사람의 입에서 대통령 노릇 못해 먹겠다는 한심한 말이 튀어 나오는 것이다. 사실 이는 남의 일이 아니다. 나는 보람있는 인생을 위해 오늘 얼마나 잘 준비하고 있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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