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취침 전에 화장실 거울 앞에서 콧수염과 턱수염 사이 털을 밀어 보았다. 아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거울 속을 보니 왠 괴물이 나를 꼬나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뿔사, 이미 손을 대었으니 콧수염을 좀 단정하게 다듬으면 어떻게 되겠지 하고 콧수염을 다듬는데 손을 대면 댈수록 더 꼴불견이다. 아이구 모르겠다. 콧수염은 버렸으니 다 밀어 버리고 턱수염만 남기면 어떨까. 콧수염을 밀고 나니 야 이건 정말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보인다. 그래 급기야는 턱수염까지 밀어 버렸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더니 수염 약간 다듬으려다 다 밀어 버린 것이다.
수염관리 한번도 안해 본 임목사와 아내의 말에 속아서 알면서도 이런 짓을 저지른 내 어리석음을 탓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이 한번 뜻을 정했으니 끝까지 버텨야지, 센스가 있기는 뭐가 있다고.” 속으로 투덜거린 말이다. 그러나 수염이 없는 게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그 중 하나는 새로운 자유이다. 과거에는 내 모습이 워낙 두드러져서 어디 가나 조심스러웠는데 이젠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몰라 보니까 자유로운 것이다. 또 덤으로 학생들이나 교인들 모두 이십 년은 젊어졌다고 이구동성으로 아부성 발언을 하니 그 또한 덕스럽다. 착각도 자유지만 30년 전 결혼식 때 사진과 내 지금 얼굴을 비교하니 별로 안 변한 것 같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