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대신 화관을 쓰라 (엡 5:23)

by 김진태 posted Sep 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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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 진태 교수 (Nyack College)

고금동서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장례를 인생의 가장 슬픈 날이라면 혼인은 인생의 가장 기쁜 날입니다. 왜 장례가 그렇게 슬픈 날일까요? 이별의 슬픔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보다 더 슬퍼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일까요? 성경은 인생에게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아마도 다가올 심판의 무서움이 더 장례를 슬픈 것으로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과는 달리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체험한 민족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의 타락으로 시작된 죽음의 저주는 그들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로 간주됩니다.

이스라엘인들의 두가지 인생대사는 장례식과 혼인식입니다. 장례식이 죄로 인한 저주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혼인식은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죄로부터 구원받은 기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혼인한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표현했읍니다. 절망속에 광야에 버려진 핏덩이를 불쌍히 보시고 자신의 옷자락으로 그 수치를 덮어주셔서 키워주시고 신부로 삼는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를 노래하였읍니다. (에스겔서 16장) 그래서 하나님없는 인생은 장례식입니다. 구원을 소망하는 시편기자는 재대신 화관을 내게 슬픔대신 희락을 달라고 노래하였읍니다. 재는 장례식을 나타냅니다. 화관은 혼인식때 신랑신부에게 씌워지는 것으로 혼인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어차피 죽음과 심판의 길로 가게 되어있는 것을 하나님이 이를 불쌍히 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더 이상 죽음이 없는 기쁨의 삶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인생은 혼인을 앞둔 신부입니다. 그래서 그러한지 유대인들의 혼인식절차는 아주 특별합니다.

마음에 있는 여인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서 총각은 상대부모의 허락을 받은 후 신부감에게 포도주를 권함으로 신부감이 최종의사를 표시할 기회를 줍니다. 받아 마시는 가 마시지 않는가로 청혼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여부를 나타냅니다. 신부감이 청혼의 잔을 받아마시고 나면 양가의 합의하에 먼저 약혼식 절차를 밟습니다. 신랑이 신부에게 약혼증서나 보증금을 주는 절차로 일단 약혼을 하면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은 동거하지 않는 외는 결혼한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그 때부터 신랑은 신부와 함께 새살림을 꾸밀 처소를 예비합니다. 이 기간은 12개월미만이라야 합니다. 처소가 예비되고 결혼준비가 끝나면 신랑이 예고없이 밤중에 신부집으로 와서 신부를 데리고 갑니다. 아름다운 주악과 등불을 앞세우고, 향기나는 꽃과 푸른 나뭇가지를 흔들면서 신부의 아름다움과 정숙한 품행과 고상한 성품을 기리면서 하객들이 앞서갑니다. 들러리들에게 둘러싸인 채 베일을 쓰고 곱게 신부화장한 아름다운 신부가 따라갑니다. 일단 신랑집에 도착하면 신랑신부의 머리에 화관을 씌우고 성대한 혼인식을 벌입니다. 화관을 쓴 신랑신부가 혼인식을 끝내고 나면 하객들의 축복속에 신랑신부의 혼인만찬이 시작됩니다. 만찬이 끝나면 신방으로 인도되어 비로소 두 사람이 한 몸이 됩니다.

최초의 신부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에서 만들어져 아담에게 인도되어 하나님의 주례로 천사들의 음악과 모든 피조물들의 축복하에 에덴에서 거행되었읍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씀합니다. 이브를 아담의 몸에서 빚어내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의 보혈과 부서진 몸에서 교회를 지어내셨읍니다. 신랑되신 주님이 천국에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시고 재림하시는 날을 기다리며 예비하게 하셨읍니다. 처소가 다 준비되면 주님은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자신의 신부된 교회를 데리고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성대하게 벌어집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사들이 둘러리로 서서 온갖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그려보십시요. 둘러선 천사들과 온 우주가 신부의 아름다운 모습과 정숙한 품행을 기리는 모습을 그려보십시요.

주님은 이 시간도 사망의 골짜기에서 헤매는 택하신 백성들에게 이 복음의 잔을 받아 마시기를 권유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현실이 바로 죽음인 것을, 재밖에 없는 슬픔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재대신 화관을 슬픔대신 희락을 택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로 이 일에 주님의 신부가 된 자들을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한 영혼이 이 구원에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잔을 마실 때에 주님의 마음은 터질 듯이 기쁘십니다. 반면 한 영혼이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 잔을 거부할 때에 주님의 가슴은 찢어질 듯이 아프십니다. 이미 이 구원의 잔을 받아마신 우리에게 주님은 보증으로 성령을 주셔서 우리를 자신의 신부로 이미 확증하셨읍니다.

이것이 우리의 참현실인진대 그러면 과연 우리는 주님의 신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정혼한 신부는 순결해야 합니다. 신랑이신 예수님과 짝이 맞는 거룩한 삶이 우리의 삶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입술과, 성품과, 행위가 예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거짓을 버리고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참된 말만 하라고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합니다. 도적질하지 말고 제손으로 열심히 일하고 선행하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모든 악을 버리고 서로 용서하고 인자히 여기라고 합니다. 두번째는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땅의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신랑오실 날을 고대하며 깨어 예비해야 합니다. 이 땅의 것에 얽매이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정리해야 합니다. 이 땅의 물질을, 명예를 많이 소유하면 할 수록이를 활용하기는 커녕 그 노예가 되어서 얼기 설기 묶여 살게 될 뿐입니다. 불요불급한 것들은 모으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 아침에 눈 한번 뜰때마다 바뀌는 세상의 명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만 합니다.

과연 나는 어떠한가요? 무엇보다 예수님의 구원에의 초대의 잔을 마셨는가요? 신부에게 보증으로 주신 성령의 증거가 있으신가요? 그러하다면 과연 신부감으로 순결한 삶을 살고 있는지요? 주님오실 날을 예비하기는 커녕 이 땅에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주님 천천히 오시옵소서하지는 않는지요? 이 시간 이 글을 읽으시는 분 모두에게 자신의 살아온 인생과 현재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권면합니다. 재대신 화관을 쓰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초청을 받아들이시기를 권면합니다. 그러할 때에 슬픔대신 희락이 여러분의 삶에 약속되어 있읍니다. 여러분의 신분이 이 땅의 썩어질 것에 있지 아니하고 썩지 아니할 하늘나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신부로 바뀝니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항상 능력주시는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보증으로 들어오실 것입니다. 이 땅의 것에 미련과 소망을 두지 않기에 어떠한 역경을 당하여도 당황하지 않고 주님께 맡길 수 있는 담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부로서 걸맞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여러분의 성품과 모습이 매일 새롭게 꽃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