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 (엡 2:4-7)

by 김진태 posted Sep 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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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 진태 교수 (Nyack College)

한국사람치고 일본인을 좋아하는 분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저희 교단의 목사님중 년세가 50이 되셔서 일본에 선교사로 가셔서 9년동안 6개의 교회를 개척하신 분이 계십니다. 신학교를 나오시고 사역의 방향을 정립하면서도 다른 곳은 다 좋지만 일본에는 안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읍니다. 일본사람이 지옥가는 것은 자업자득인데 구태여 그런 곳에 갈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앞장섰던 것입니다. 삼일운동당시 제암리교회에 불을 지르고 나오는 사람마다 총으로 다 쏘아죽였던 일본인의 만행을 기억하는 한국인을, 하필 일본인을 위한 선교사로 세우십니까? 어린 유 관순을 상상도 못할 고문으로 죽게 한 그 일본인들. 마지막 죽어가며 부르짖었던 그의 음성. 일본은 반드시 반드시 망하고야 만다. 그 기억이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왜 하필이면 한국인을 그 곳에 보내려 하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목사님을 강권적으로 일본에 선교사로 보내셨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의 벌거벗은 처지를 보시고 친히 내려오셔서 우리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워주신 그 마음을 목사님에게 보여 주셨읍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일본사람이나 한국사람이나 똑같이 구원받아야 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인 것을 깨닫게 하셨읍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다 한 가지로 후패하고 더러운 옷같은 우리의 모습인 것을 알게 하셨읍니다.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목사님에게 주셔서 일본인들을 위해 피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시게 하셨읍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총독 빌라도마져도 용서하신 예수님. 자신을 배반한 가롯 유다를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셔서 자신을 조롱하고 침뱉는 무리들에게 대꾸하지 않으시고 하신 말씀.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저들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려 친히 그 죄값으로 자신의 거룩한 죄없는 몸을 십자가에 맡기신 그 주님이 어느 누구인들 용서하지 못하시겠읍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구약성경에 나오는 왕들중 가장 악한 왕이 있었읍니다. 55년간이나 장기집권하며, 유다왕국을 멸망으로 몰고 간 장본인. 성군 히스기야와 아름다운 여인 헵시바의 아들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죄악의 화신이었던 므낫세왕입니다. 당시 세상의 천박한 우상숭배와 물질문명의 홍수에서 하나님께서 건져내서 세워주신, 유일신 여호와의 신앙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음란한 이방신숭배로 유다를 타락시킨 장본인입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친아들을 예루살렘 서쪽 힌놈 골짜기에서 몰록신에게 산채로 번제로 바친 배교자입니다. 자신만 타락했을 뿐 아니라 온 유다백성들을 함께 타락하도록 유도한 악한 왕. 자신의 스승이며 어쩌면 외할아버지인 이사야선지자를 산채로 톱으로 켜서 죽인 악한 왕.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서 나오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끝없는 타락으로 점철했던 죄악의 대명사 므낫세. 결국 선지자의 경고대로 자신이 그렇게 선망하던 바빌론으로 갈고리를 코에 끼운 채, 쇠사슬에 몸을 묶인 채, 발을 착고에 채인 몸으로 개끌리듯 끌려갑니다. 바빌론의 캄캄한 지하뇌옥에서 몸부림치면서 그제야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신세를 깨닫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동안 자신이 그토록이나 외면하고 배반했던 그 열조의 하나님께 크게 겸비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기다리셨던 것처럼 즉시 기도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 간구를 들으시사 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성품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죄지은 자는 벌받아야 마땅한데도, 하나님은 그러한 존재일지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앞에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하시고 받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신 사랑은 바로 죄속에 빠져서 몸부림치는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불붙는 것같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독생자 예수님을 주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원하시는 애끓는 마음입니다. 구약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중 "돌아오라"는 단어가 있읍니다. 돌아오라 이스라엘아 어찌하여 네가 스스로 멸망의 길로, 죽음의 길로 가느냐? 수많은 선지자를 통해서 계속 전하는 멧시지는 동일합니다. 네 불쌍한 처지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외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던가를 보지 아니하시고 지금 현재 나의 마음이 진실로 하나님앞에 겸비하여 돌아왔느냐를 보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현재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에 힘입어 자신에게 나아온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그래서 더 이상 세상속에서 죄속에 거하지 아니하고 예수님과 함께 하늘보좌에 앉히셔서 만물을 다스리는 존재로 세워주십니다. 비록 몸은 이 세상에 있지만 눈은 하늘을 향해 높이 든 천국지향의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믿으라고 하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먹고 살려니 매일 죄만 짓고 사는데 무슨 염치로 교회에 나갑니까? 앞으로 죄 안지어도 살만하면 교회에 나가겠읍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신 성품을 모르시는 소치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집나간 탕자가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기만 손꼽아 기다리고 계신 긍휼에 풍성하신 아버지이십니다. 므낫세의 모친 헵시바의 이름은 바로 우리 믿는 자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내가 저를 기뻐하노라." 그 이름 그대로 하나님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내가 기뻐하는 자라고. 지금 이 시간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하며 아버지 앞에 나오십시요. 그러할 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얼싸안으시고 천국시민으로 영접하실 것입니다. 더 이상 이 땅의 팔자소관에 묶이지 않은 자유한 삶. 현재의 삶의 작은 문제에 연연하지 아니하고 장래의 소망을 바라보고 전진하는 삶. 현재의 고난은 장차 다가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알기에 어떠한 고난도 난관도 이겨나갈 수 있는 능력의 삶을 사는 존재로 탈바꿈시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