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리 한담 (37) 화장실 문화

by 김진태 posted Nov 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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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아내가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해서 근처에 있는 타겟 가게에 다녀왔다. 타겟은 저소득층 고객을 겨냥한 대형 잡화 백화점이다. 왠만한 가정용품은 타겟에만 가도 충분하다. 조금 거리가 멀어 집 바로 옆에 있는 CVS로 가던 우리 가정이지만 이번에는 살 것도 많고 해서 15분 정도를 운전해서 갔다. 그 날 따라 속이 편치 않아 화장실에 들렀다가 안이 어찌나 불결하고 난잡하던지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쓰레기통은 철철 넘치고 페이퍼 타월도 다 없어진데다가 변기 좌우에는 필설로 하기 어려운 것들이 즐비했다. 특히 좌변기의 뚜껑을 그대로 둔채 서서 볼 일을 본 증거가 그대로 있어서 다음 사람에게 불편과 혐오감을 유발시킨다. 왜 이런 몰상식한 짓을 하는가? 내 볼 일 보는 데에만 관심을 쏟을 뿐, 다음 사람에게 어떠한 불편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고급 숍핑 단지인 가든스테이트 몰의 화장실은 언제 가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무엇보다 좌변기에 아무렇게나 내깔기는 그런 부류의 인생은 절대 만날 수 없다. 고객의 수준이 화장실 문화 수준과 비례하는 것이다. 인종차별적이라고 비난할 지 모르지만 피부색깔과 화장실 문화 수준이 같이 간다. 나는 여기에서 왜 코캐시안 (백인) 들이 미국사회의 정치와 경제를 지배하는 이유를 찾는다. 우리 눈에 냉혹하게 보일는지 몰라도 백인들은 공중도덕을 철저히 지킨다. 내가 이런 짓을 하면 타인에게 어떤 피해를 끼칠 것인가 생각하고 행한다. 그래서 좌변기의 뚜껑을 그대로 둔 채 용무를 보지 않는 것이다. 낯선 곳에 가서 길을 잃었을 때 길을 물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실 것이다. 백인에게 물으면 백이면 백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지만, 소수민족계 특히 흑인이나 히스파닉의 경우는 한결같이 모른다고 한다.

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타겟에서 겪었던 것과 동일한 경험을 한국계 가게에서 오늘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국인이 흑인이나 히스파닉보다는 낫다고 자부하는 분들이 계신데, 내가 보기에는 경제적으로 조금 나은 것이지 공중도덕 면에서는 오십보 백보이다. 그동안 뉴욕 뉴저지 한국교민사회는 엄청난 성장을 이룬 것이 사실이고, 주류사회 진출에 상당한 성과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지난 주 선거에서 쥰 최가 에디슨 시장에 당선된 것이 그 증거 중 하나이다. 그러나 백인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한인사회가 되려면 아직도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들이 많다. 그 가운데 심각한 문제 두 가지를 든다면 주인의식 결여와 공중도덕성 결여이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내 귀에 가장 강하게 부딪쳐 온 말이 바로 “What can I do for you?” (무엇을 도와 드릴가요?) 이다. 물론 사업을 위해서 이런 말을 한다고 하겠지만 백인사회가 이러한 공중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가 좌변기 뚜껑을 여는 일부터 시작할 때에 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 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빌 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