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8강진출에 즈음하여)

by 김진태 posted Sep 1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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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수들은 오늘 놀라운 기적을 창출해내었다. 경기내용 면에서 보면 한국이 고전한 경기였다. 경기 시작하자 마자 얻은 페널티 킥의 기회를 수포로 돌린 후 둔한 몸놀림으로 몰리더니 급기야 비에리의 헤딩 골이 터졌다. 예선 리그에서 쉬지 않고 뛰었던 피로가 한번에 몰려오는 듯 선수들의 얼굴에도 당황과 초조가 가득차 있었다. 후반 45분이 거의 다 흘러가 역시 역부족인가 체념하였슬 때 설기현의 통렬한 슛이 이태리의 골을 갈랐다. 아침부터 테레비 앞에 붙박혀서 옴추려졌던 마음과 몸이 순식간에 환호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파트가 떠나가라고 골이라고 외쳐대었다. 이렇게 극적인 승부가 있을까? 설 기현의 동점골이 터졌슬 때 승리의 물줄기는 한국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연장후반 종료직전 안 정환의 머리가 공의 방향을 살짝 틀었슬 때 경기장은 완전히 축제의 분위기로 바뀌었고 이태리 선수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진하게 깔렸다.

오늘 경기를 보면서 새삼 느낀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지도자인 히딩크의 과감한 승부수이다. 후반 수비수 2명을 빼고 공격수인 황 선홍과 차두리를 집어넣음으로 공격 위주로 진용을 개편한 것은 히딩크다운 작전이었다. 사실 이태리같은 강호를 맞아 수비수 두명을 공격수로 바꾼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다. 그러나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라는 사실을 알고 과감하게 작전을 전개한 히딩크는 과연 뛰어난 지도자이다.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면 비록 객관적 전력이 강한 팀이라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배수진을 치고 필사의 각오로 달려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인생도,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믿음은 자세이다. 상대가 누구이든 목표가 아무리 커 보일지라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필사의 각오로 달려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눅이 들기 시작하면 작은 목표조차도 달성하지 못한다.

둘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투지이다. 한골 차로 밀리면서 위기에 위기를 맞았던 우리 선수들이 승리한데는 바로 이 투지가 큰 역할을 감당했다. 경기의 내용으로 보면 이태리가 주도한 경기였다. 객관적으로 보아 한국선수들은 스피드 면에서도 예전 같지 않았고 공격진도 이태리의 빚장수비를 뚫지 못하고 고전하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후반 마지막까지 필사적으로 뛰다 보니 마지막 기회가 설기현에게 왔고 설기현은 단 한번 맞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동점골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기회는 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기회를 골로 연결하느냐 못하느냐가 승부를 가르는 것이다. 설기현은 그만큼 준비된 그릇이었기 때문에 골로 연결한 것이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우리 한국인의 전통적인 성품이다. 광개토대왕비가 증명하듯 고구려 때 한국인들은 공격적인 자세로 그 영토를 현재 만주땅 모두를 가진 대국으로 성장시켰던 민족이다. 문제는 어떤 정신자세를 가진 지도자가 국가를 지도하느냐이다. 경기장에 "히딩크를 대통령으로"라고 쓴 현수막이 말하듯 한국민은 큰 목표를 세우고 국민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공격적 적극적 자세로 밀고 가는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바라건데 이런 지도자가 한국에 나왔스면 한다. 또한 바라건데는 국민들은 아무리 정치 경제의 여건이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함께 온 마음과 힘을 합하여 나아가 월드컵에서 이룬 것 같은 민족의 도약을 이루기를 원한다. 그래서 세계사에 새 장을 쓰는 대장부다운 민족으로 이름을 남기기를 원한다. 겸하여 내친 김에 작은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이제 4강을 향해서 달려가기를 원한다. 다음 상대인 스페인은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팀이다. 아 기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