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All4Jesus

조회 수 87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임마누엘 칸트는 1724년에 독일에서 태어나 1804년까지 살았던 사람으로 현대철학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러나 칸트는 신학계에서도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대표적인 것이 소위 네 가지 순수이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 (Four antinomies)에 관한 글이다.


칸트가 말한 첫 번째 안티노미는 초대교회 때 있었던 극렬한 삼위일체논쟁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교리이다이로부터 모든 하나님의 개념과 그분의 사역에 대한 교리가 전개되며 그리스도의 신성 문제와 연결되어 기독론의 핵심을 이룬다. 문제는 이 삼위일체 교리가 성경에서 명백하게 잘 설명되어 있지 않은 교리에서 온다. 초대교회 이래 수많은 학자들이 이를 인간이성으로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려고 시도했으나 모두 이단으로 정죄되고 말았다. 삼위이신 분이 또 어떻게 한 분이신가를 어떻게 설명해도 결국 이단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설명하려 하면 할 수록 오리무중에 빠지는데, 그렇다고 부인하면 지옥에 빠지는 것이 삼위일체교리이다.”


두 번째 안티노미도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던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예수라는 한 인격안에 존재하는가에 관한 논쟁이다. 이 또한 극렬한 교회의 분열만 초래했을 뿐 확실한 설명이 불가능한 문제이다. 급기야 교회는 더 이상의 논란을 막기 위해 예수안에 신성과 인성이 본질적으로 함께 한다는 소위 후포스테틱 유니온교리를 기원후 451년 챨스돈 공회에서 발표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본질 (Hupostasis) 혹은 인격 (Person)안에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함께 했나를 규정한 것이다. “성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실 때에, 인성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본질 혹은 인격 안에서 신성과 영원히 분리할 수 없게 결합했다. 그러나 이 두 속성은 온전히 별개로 존재했다. 이 두 속성은 결합한 후에도 변화한 것도 아니요, 혼합되거나 다른 모습으로 바뀌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또한 완전한 인간이다.” 이 교리가 과연 어떻게 예수 안에 신성과 인성이 함께 했나를 설명했는가? 답은 아니올씨다이다. 단지 이를 규정하기 위해 해서는 안되는 이단적인 시도를 규정했을 뿐이다.


세 번째 안티노미는 악이 어디서 왔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은 절대주권을 가지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우주만상이 창조되기 전에 홀로 독존하셨던 분임을 밝히고 있고, 이 하나님은 또한 그 성품이 도덕적으로 선하시며, 그 안에 죄나 악이 하나도 없는 온전히 거룩하신 분이라고 계시했다. 문제의 요점을 18세기 스코틀란드 철학자인 흄은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절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악을 예방할 수 있었는데도 방치했다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 아니며, 하나님께서도 악을 예방할 수 없었다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선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을 다 만족할 수 있는 답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이 문제는 특히 , 의로운 자에게 고난이 오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많은 성도들의 입술에 회자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도 결국 인간이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일 수 밖에 없다.


네 번째 안티노미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한 절대예정론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공존하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안주의로 대변되는 이 논쟁은 어느 쪽도 승리할 수 없는 근본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는 문제이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전적타락에 근거하는 반면, 아르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근거한다.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을 가지고 창세전부터 특정인간을 구원하고 특정인간을 구원하지 않기로 예정했기 때문에 인간은 그 구원의 은혜를 거부할 수도 없고 일단 한번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그 구원을 잃을 수 없다는 것이 칼빈주의의 요점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과연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일어난다. 반면에 아르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대속의 죽음은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전제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원죄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은 그 자유의지로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으며, 일단 구원받았던 사람도 범죄함으로 그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안주의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해야 할 것인가?      


이 네 가지 논쟁이 교회사를 통하여 얼마나 소모적인 결과를 초래했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에릭슨은 이 모든 것들이 성경에서 하나님을 지나치게 분석하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나님에 관하여 지나치게 인간이성에 근거하여 추측 혹은 이론적인 결론을 내리게 됨으로서 오히려 논쟁의 소지를 만들어 교회를 분열하게 한다. 칸트가 말했듯이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아는 한계가 있음을 항상 기억하지 못한데서 온 오류이다. 에릭슨은 신학을 공부하는데 있어 명심해야 할 태도를 이렇게 정리했다. 하나님에 대한 연구는 하나님을 더 잘 알려는 수단이며 그리하여 하나님과 더 좋은 관계를 수립하려는 노력의 일환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너무 일반적이고 추상적이어서도 안되고, 또 너무 신비적이거나 수리적 논리의 산물이어서도 안 된다.

꼭 에릭슨이 아니더라도 성경은 이에 관해 명백하게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벧후 3:15-18)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c) 2013 All4Jesus.net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