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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인간창조와 2장에 나오는 인간창조는 서로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베레아파로 대표되는 두가지 인간창조설이 비성경적이며 비논리적인 것임을 입증하고 이에 대한 건전한 접근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들은 두 가지 인간창조설의 근거를 창세기 4:14절에 나오는 가인의 발언과 창세기 1장과 2장의 인간창조묘사의 차이점에서 찾고 있는 바, 필자는 이 두 가지 근거에 대해 분석 비판함으로서 그 허구성을 입증할 것이다. 이 논문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 문제구절인 창 4:14절과 베레아 파의 주장을 제시한 후; 둘째 창세기 1장과 2장의 인간창조 묘사를 비교검토할 것이다. 셋째, 베레아파의 주장이 두 가지 측면에서 결정적 오류를 내포하고 있는 증거를 제시함으로서 2가지 인간창조설의 허구성을 입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창세기 1장과 2장의 인간창조에 대한 성경적, 논리적 접근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두 가지 인간창조설의 허구를 반박하기 전에 이들의 주장부터 들어보자. 이들의 주장은 두 가지 발견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 이들의 출발점은 창세기 4장 14절에 나오는 가인의 발언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문제는 성경에는 분명히 가인과 아벨에 대해서는 아담과 이브의 소산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그러면 가인을 죽이려는 자들은 그러면 어떤 존재인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 답을 천지창조에 관한 말씀이 창세기 1장에서 나오고 2장에도 나오는데서 찾는 것이다. 특히 인간창조에 대한 내용이 1장과 2장은 얼핏 보아 방법론적인 면에서 서로 다른 점이다.

        바로 이것이 베레아파가 두가지 인간창조설을 주장하는 두번째 근거이다. 특히 이들은 창세기 2장 7절에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까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데서 착안하여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인간은 영혼이 없는 동물같은 인간이며 반면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인간은 영혼이 있는 인간이라고 주장함으로 그 해결점을 찾는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로 시작되는 인류는 영혼이 있는 인간이며, 가인을 죽이려할 인간들은 바로 1장에 나오는 영혼이 없는 인간들로 아담과 이브이전에 이미 세상에 편만한 존재들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한번 창 1장과 2장에 나오는 인간창조묘사를 비교해 보자.

        먼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인간창조에 관한 말씀구절을 살펴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1:26-27)

        먼저 창 1장에 나오는 천지창조와 인간창조의 묘사는 시적이고 그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산문적 묘사를 않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는데 그 재료가 무엇인지, 다른 사물처럼 단지 말씀으로 창조하셨는지 재료와 방법에 대한 언급이 없다. 또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만 하였지 2장처럼 남자의 몸에서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없다.

        반면 창세기 2장은 인간창조를 산문적으로 구체적으로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1장과는 상이한 내용처럼 보이는 구절도 있는 것이다. 첫째, 2장 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었다고 함으로 사람의 재료가 흙임을 밝히고 있고, “생기 (루아흐: 호흡, 바람, 영, 성령) 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 (네페슈 하야: 살아있는 혼) 이 된지라”고 함으로 인간의 생명의 근본이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기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참고로 히브리어 네페슈는 여러 가지 뜻이 있으나 주로 throat (울대 혹은 성대), 생명, 혼으로 번역되는 단어로 히브리어 루아흐 (영), 바싸르 (육)과 함께 살아 있는 인간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한글성경의 생령이란 번역은 잘못된 번역이다. 원래의 뜻은 흙으로 만든 생명없는 육신 (바싸르)에 루아흐를 불어넣으매 생명을 지닌 존재 즉 네페슈 하야가 되었는다는 것이다.

        둘째, 먼저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의 뼈에서 이브를 만드는 동기와 과정을 묘사함으로 창조에도 순서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18절은 먼저 “사람(아담 즉 남자)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라는 말씀을 통하여 여자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목적과 여자의 존재이유를 알려주고 있다. 20절에는 다시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이브를 만드시는 목적을 확인시켜준후 21절에는 이브를 만드시는 방법을 보여준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1-23절).

        이상에서 베레아파가 두가지 인간창조설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는 말씀구절들을 살펴 보았다. 이제부터는 이들의 주장이 비성경적이며 비논리적인 발상임을 두 가지 근본적 오류를 지적함으로서 증명하겠다.  두가지 인간창조설의  결정적 오류는 두 가지이다.

        첫째, 이들은 1장의 인간창조는 영혼없는 인간이며 2장의 인간창조만 영혼있는 인간의 창조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말씀을 잘 읽어보면 1장에 나오는 인간창조도 분명히 영혼있는 인간의 창조인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에 영혼이야기가 안 적혀 있다고 해서 영혼없는 인간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성경을 모르는데서 기인한다. 그러면 1장 어디에 영혼있는 인간을 나타내는 열쇠가 있는가 한번 살펴보자.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창세기 1장의 인간창조의 가장 중요한 촛점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든데 있다는 사실이다. 잘 살펴보면 1장 27절과 28절 그 짧은 내용 안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다는 내용이 3번 반복해서 나온다. 거기에다 동일한 뜻인 “우리의 모양대로”란 말까지 포함하면 네번이나 반복되어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의 형상이란 표현이 2장의 인간창조에 나오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생기를 받았다는 내용과 서로 다른 표현인가 아니 열등한 표현인가 한번 자문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알기로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생기를 받았다는 표현보다 더 포괄적일 뿐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더욱 고귀한 존재로 표현한 것이다. 창세기 1장에 형상이라고 사용한 히브리어 "쎌렘"이란 단어는 우리가 흔히 우상으로 번역하는 단어로 당시 사람들은 일단 "쎌렘"을 만들어 신전에 두면 그 밤에 신이 친히 강림해서 그 안에 영으로 거하기 때문에 "쎌렘"을 살아있는 신과 같이 여겼으며 신을 온전하게 대표하여 이 땅에서 만물을 다스리는 존재로 믿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거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하나님같은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표현이다. 이는 성경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26절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나오고 그 직후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인간의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뿐 아니다. 27절에도 동일한 내용이 반복될 뿐 아니라 더 구체화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28절에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1장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말과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령이 되었다는 표현은 동일한 표현인 것이다.

        두번째, 결정적인 오류는 이들의 주장은 결국 두 가지 다른 천지창조가 있었다는 결론인데 그렇다면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인간이 같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안된다. 두가지 천지창조가 있었다면 현재의 인간이 거주하는 우주와는 별도의 우주에 다른 인간이 거주하여야지 어떻게 같은 천지에 더욱이나 같은 지구상에 두가지 다른 인간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천지창조에 관한 한은 1장과 2장이 같은 사건을 묘사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중에서 인간창조만 쏙 빼어내어 다른 창조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상식이하의 논리인 것이다.

        이상과 같이 두가지 관점에서 두 가지 인간창조설의 오류를 밝혔다. 그러면 원점으로 돌아가서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건은 과연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바른 것인가에 대해 상고한 후 가인이 말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떠한 존재들인가에 대해 필자의 의견을 간단하게 제시하고저 한다.

        먼저, 창 1장과 2장의 창조사건묘사의 차이점에 대한 접근방법에 대해 세 가지를 제시하겠다. 첫째, 창세기 저자의 표현기법인 수사법적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성경은 특히 창세기는 같은 사건을 두번 혹은 세번에 걸쳐 다른 각도에서 조명시켜 줌으로서 그 내용을 우리에게 더 정확하게 전달하려 하는 문학적 기술방법을 적용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특히 히브리문학의 특징인 반복법으로 성경이해에 항상 고려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과 2장은 동일한 인간창조에 관해 두 가지 다른 각도에서 조명되었다고 보는 것이 우선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견해이다.

        둘째, 창세기는 한 가지 문학쟝르로 된 책이 아니고 여러 가지 문학쟝르를 혼합한 작품임을 감안하며 보아야 한다. 창세기 1장과 2장은 문학적 쟝르 (문체) 가 다르다는 사실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1장은 시로 쓰여있어 구체적인 묘사보다는 간단하면서도 시적 환상적인 반면 2장은 산문으로 쓰여있어 인간창조를 보다 구체적이면서도 이야기를 하듯이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2장의 내용이 구체적이고 1장에는 없는 내용이 있다고 해서 서로 다른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문학적 소양이 없는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셋째, 창세기 1장과 2장은 두가지 신학적인 관점에서 동일한 사건을 묘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장은 단지 말씀만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전지전능하시고 위대하셔서 우리가 감히 쳐다볼수도 없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반면 2장은 이토록 크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친히 그 소매를 걷으시고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친밀한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그려줌으로 온전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도 창 1장에는 "엘로힘"을 사용하고 2장에는 "야훼"를 사용함으로 그 특성을 살려주고 있는 것이다. "엘로힘"은 복수형태로 흔히 영어로 "majestic plural"로 본다. 이는 셈족언어의 특성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이상에서 필자는 2가지 인간창조론의 오류를 밝힐 뿐 아니라, 논쟁의 근거가 되었던 창세기 1장과 2장의 인간창조 묘사의 차이점에 대한 성경해석학적 접근방법을 제시하였다. 다음은 창세기 4장 14절에 나오는 가인이 말한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접근방법이다. 사실 이 문제는 수수께끼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세 가지 성경을 보는 각도를 제시함으로 실마리를 제공하겠다. 첫째,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사건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사고이다. 성경기록상 아담과 이브의 자녀가 가인과 아벨만 있다고 해서 다른 자녀는 없었다고 보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둘째, 현재의 인간의 수명이나 과학적 지식에 근거해서 창조직후 인간의 수명이나 상황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모순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가인의 출생후 아벨의 탄생까지 이르는 기간이 상당히 오랜 세월일 가능성이 많으므로 그동안 무수한 아담과 이브의 자녀가 탄생하여 지구상에 이미 편만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셋째, 성경을 읽을 때에 우리는 성경의 목적이 우리의 영혼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내용만 하나님께서 선별적으로 계시하여 주신 것이지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므로 백과사전식으로 성경을 보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상식으로 과학적 지식으로 완전히 파악할 수 있다면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무슨 말이야 하면 성경에 내용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억지로 이론을 적용하여 풀려하지 말라는 말이다. 기록된 말씀을 넘어갈 때, 항상 문제가 생긴다. 내 상식으로 이해가 안 가니까 성경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분들의 내면에 자신도 모르는 영적 교만이란 뱀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경을 연구하면서 세월이 갈수록 실감하는 것은 나의 무지함과 무능함과 교만함이다. 말씀은 끝이 없는 것이다. 나는 안다고 여기고 말씀을 비판하고 기록된 말씀을 넘어서려 하는 영적교만과 지적교만은 나를 파멸로 몰아갈 뿐이라는 사실 이제야 깨닫는 진실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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