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산 기도원 주기도문 강해 5강
2016년 11월 17일 저녁기도회
“용서-영혼의 치유”
(마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9-13) 『[9] "This, then, is how you should pray: "'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10]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11]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12]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13]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하나님의 이름과 그 나라와 그리고 그 뜻을 최우선으로 기도드린 후, 우리의 일용할 양식 즉 육신적 필요에 관해 기도하는 것에 관해 상고했다. 이번 시간에는 우리의 영혼의 치유에 관한 기도에 관해 상고하려 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흔히 이 구절을 우리의 구원과 연결시키는 시도가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시도이다. 왜냐 하면 주기도문은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가르치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가르치셨을까? 왜냐하면 우리 마음속에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완악한 마음이 있는 한 우리는 온전한 평안도, 하나님과의 교제도 맛볼 수 없기 때문이다. 뿐 아니라 그 억울함과 분노가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는 영혼의 감옥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기도는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할 능력을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왜냐 용서는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능력을 덧입을 때에 그 음성에 우리가 그저 순종할 때에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을 직접 경험한 코리 텐 붐 여사는 어느 날 밤, 뮌헨의 한 교회 예배에서 간증을 끝내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만남과 직면했습니다. 그는 악명 높은 라벤스부르크 수용소에서 샤워룸 출입구에 서 있던 바로 그 장교였습니다. 코리 텐 붐 여사는 자신의 내부에 숨어 있던 고통스런 기억들과 발가벗김 당했을 때의 모욕과 수치심이 다시 끓어올랐습니다. 그녀는 이 사람만큼은 결코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습니다. “자매님, 당신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자매님이 말씀하신 것,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시고 내 모든 죄를 깨끗이 씻기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습니다. 순간, 코리 텐 붐의 증오의 감정이 너무나 강했습니다. 그녀는 손을 들어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와 악수를 한다는 것은 위선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 속에서 속삭이셨습니다. “코리, 네 손을 내밀어라. 그러기만 하면 된다.” 마침내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십사는 절망적인 기도와 함께 코리 텐 붐 여사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순간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분노는 녹아버렸고, 용서하는 사랑이 저항할 수 없는 강한 힘으로 속에서 용솟음쳐 올라왔습니다. 그녀는 이때의 놀라운 경험을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순종해서 내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뿐이었어요.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