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28
지난 주말부터 태풍의 영향으로 숲길을 찾지 못하다가, 마침내 일기가 풀릴 기미가 보여 다시 숲으로 향했다. 작년 응급실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뒤로는 과도한 헬스장 운동을 삼가고, 숲을 걷는 일만으로도 충분한 만족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하루라도 숲길을 거르기만 하면 온몸이 뻐근해 견디기 어려웠다. 다행히 태풍이 큰 피해 없이 스쳐 지나간 듯하여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아직도 가랑비가 살짝 흩뿌리는 가운데 숲에 들어서니, 태풍이 남긴 흔적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큰 나무가 쓰러진 모습도 보이고, 산책로마다 잔가지들이 뒤덮여 있어 자칫 발을 헛디디면 넘어지기 십상이었다. 늪지대에 놓인 나무다리를 건너다가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으나, 손에 든 작대기로 몸을 지탱해 낙상을 면했다.
태풍의 영향권 아래 있는 숲을 걷는 데에는 묘한 맛이 있다. 무엇보다 이런 날씨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숲이 지닌 고요하고 장중한 정취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적막 속을 사색하며 걷고 있는데, 문득 “나도 여기 있다”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막 새 뿔을 틔우기 시작한 젊은 숫사슴 한 마리가 내 곁에 서서 으스대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아무도 찾지 않던 숲에 손님이 나타나니, 이 녀석도 호기심이 동한 모양이었다. 내가 사진을 찍어도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 한참을 빤히 바라보다가, 내가 걸음을 옮기자 그제야 몸을 홱 돌려 숲속으로 달아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정겹던지.
아, 태풍이 지나간 뒤 숲이 품은 이 고요여. 참으로 마음 깊은 곳을 적시는 평안이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시편 37:7)
폭풍이 지나간 숲처럼, 우리의 삶에도 흔들림과 소란이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고요가 있다. 부서진 가지들 사이에서도, 젖은 흙냄새 속에서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잠잠하라. 내가 여기 있다.” 오늘의 걸음 속에서 그분의 고요한 임재를 다시 깊이 느끼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