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10
아직도 겨울이라 쌀쌀하긴 하지만, 그동안 너무 혹독하게 추웠던 탓에 오늘의 31도 날씨는 오히려 온화하게 느껴진다. 오전 내내 원고를 수정하느라 머리가 과부하가 걸린 것 같아, 정오가 조금 지나 집을 나서 동네 숲으로 산책을 갔다. 길가의 눈은 많이 녹았지만 숲속은 여전히 폭설 직후 그대로라, 고요함과 흰눈으로 덮인 숲길을 걸을 수 있었다.
한 가지 어려움은 사람들이 다니며 다져 놓은 길이 살짝 녹아 매우 미끄러웠다는 점이다. 발을 디딜 때마다 미끄러져 넘어질 것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몇 번 그러다 보니 요령이 생겨 거의 뛰듯이 걸어가게 되었는데, 이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지난 한 주 동안 혹한이 계속되던 때에는 숲을 거의 혼자 독차지하다시피 했는데, 오늘은 제법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빨리 걷던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앞서 가던 노부부였다.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두 분이 지팡이를 짚고 아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다져진 눈길은 폭이 좁아 쉽게 추월하기도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이고 뒤를 따라가다 보니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한참을 그러다가 “실례합니다, 추월할게요” 하고 지나치니 살 것 같아 속도를 좀 냈는데, 갑자기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마침 맞은편에서 오던 장년의 남자가 “저런, 저런” 하며 손으로 나를 잡는 시늉을 했다. 다행히 중심을 잡아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표정과 동작이 재미있고 고마웠다.
점심시간이기도 해서 오늘은 짧은 코스로 잡아 걸었는데, 이번에는 사슴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 떡하니 서서 길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 못하는 짐승에게 비켜 달라고 하기도 뭐해서 잠시 기다려 주었더니, 예의가 있는지 다른 길로 돌아갔다. 사슴들이 이렇게 사람들이 다져 놓은 길을 선호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다른 곳은 눈이 깊고 푹푹 빠지지만, 사람들이 다닌 길은 단단하게 다져져 있어 사슴이 걷기에 수월하기 때문이다.
사슴을 보내고 나니 문득 “얘네들은 이렇게 눈 덮인 숲에서 뭘 먹고 살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뭐, 나름대로 먹이를 찾는 방법이 있겠지 싶어 길을 돌았다.
